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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우리나 광고의 역사 :: 광고학개론 본문
목차 및 개요
1. 근대 광고의 출현
2. 일제시대의 광고
3. 광고의 아동기
4. 광고의 현대화기
5. 광고 산업의 비약적 성장
일상생활 어디에서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광고.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광고를 뺀다면, 한 단면에 구멍이 뚫린것 처럼 무미건조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역사속에서 광고는 우리의 시대와 사회를 반영해왔고, 지금 현재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광고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한국의 광고는 다양한 변화와 발전을 거쳐 오늘날의 형태로 이르렀다. 초기에는 주로 손수 제작되는 광고물이었지만, 현대에 이르면서 텔레비전, 라디오, 온라인 매체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광고로 발전해왔다.
한국 광고의 중요한 이정표 중 하나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시기로, 이 때의 광고는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다.
또한 한류 열풍과 함께 한국의 광고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광고 캠페인을 선보이고 있다.
근대 광고의 출현 (1886~1910)
▶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광고
- 1886년 정부가 발행한 한성주보에 최초의 근대광고가 실림.
- 광고주 : 세창양행 "덕상세창양행고백"
▶ 광고가 정기적으로 게재된 것은 1896년 서재필이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한 후부터이다.
- 주로 책과 약품 광고로, 총지면의 10~15%정도차지.
- 대한매일신보의 경우, 지면의 약 50%에 광고가 실렸다.
▶ 1910년에는 광고 대행업자가 생겨날 만큼 광고가 발전.
- 한성광고사 : 우리나라 광고 대행사의 시초
“저희 세창양행이 조선에서 개업하여 호랑이, 수달피, 검은담비, 흰담비, 소, 말, 여우, 개 등 각종 가죽과 사람의 머리카락, 소, 말, 돼지의 갈기털, 꼬리, 뿔, 발톱, 조개와 소라, 담배, 종이, 오배자, 옛 동전 등 여러 가지 물건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세창양행이 조선에서 개업하여 외국에서 자명종 시계, 들여다보는 풍경, 뮤직박스, 호박, 유리. 각종 램프, 서양 단추, 서양 직물, 서양 천을 비롯해 염색한 옷과 염료, 서양 바늘, 서양 실, 성냥 등 여러 가지 물건을 수입하여 물품의 구색을 갖추어 공정한 가격으로 판매하오니 모든 귀한 손님과 선비와 상인은 찾아와 주시기 바랍니다.”
일제시대의 광고
▶ 무단통치 시기 (1910~1919.3.1)
-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가 유일한 한글 신문으로 광고매체의 역할.
▶ 민족분열통치(1920~)
- 조선일보, 동아일보, 시사신문 등이 창간된 이후로 1925년에는 한국보다 일본의 광고량이 많아져, 일본의 식민지였던 현실이 드러남.
광고의 아동기 (1945~1969)
▶ 1958년 해방이후 최초의 광고대행사인 한국광고사가 설립 됨.
- 1959년 부산 mbc 라디오 방송 시작.
- 1960년 월간 광고지 '새광고'발행.
- 1963년 kbs 광고방송 시작.
▶ 한국일보
- 1956년 광고상담소 신설, 1957년 광고국설치
- 1960년 9월 한국최초의 광고전문 월간지 '새광고'창간
▶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자동차, 맥주, 라면, 미원 등이 광고된다.
광고의 현대화기 (1970년대)
▶ 텔리비젼이 보급되고, 광고대행사가 정착하면서 광고의 질적, 양적 발전의 시기가 됨.
▶ 1976년 대한항공이 미국의 광고대행사에 광고를 대행시키는 등 국제 광고가 집행되는 시기.
▶ 광고의 전문화
- 광고대행사 조직 확대, 광고대행업 외에 시장조사, 매체조사 등의 조사업무와 전문도서 발간 등의 업무실시.
▶ 특별한 카피없이 자기 브랜드의 이름을 반복하는 CM송이 특징.
광고 산업의 비약적 성장 (1980~)
▶ 1980년 12월 언론통폐합과 방송의 공영화로 방송광고가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 언론 통폐합으로 한국방송광고공사가 광고대행 위탁권을 갖게 됨.
"언론통폐합"
1980년 언론 통폐합(言論統廢合)은 1980년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의 지시 아래 추진된 언론 통폐합 조치이다. 1979년 10·26 사건과 12·12 군사반란을 거치면서 실권을 잡은 전두환은 계엄포고령에 따라 모든 언론 보도를 검열했다. 1980년 2월 전두환은 보안사 정보처에 언론반을 신설했다. 언론반에서는 K공작계획으로 언론인을 회유하고 언론사의 논조를 민주화 여론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한 언론 공작을 했다. 이러한 언론인 접촉 공작은 1980년 8월 하순까지 추진됐다. 보안사와 중앙정보부는 파악된 언론인들의 동정, 언론사 시안 등을 토대로 언론의 공정성, 공공성을 회복한다는 구실로 언론 통폐합 사전 작업을 했다. 1980년 11월 11일 신군부는 계엄해제 이후 예상되는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언론통폐합이 필요하다는 인식 하에 언론통폐합의 실행을 결심했고, 허문도 등은 「언론창달계획」을 입안, 1980년 11월 12일 전두환의 결재를 득한 후, 집행을 보안사에 위임했다. 집행을 위임받은 보안사는 1980년 11월 12일 오후 6시경부터 언론사 사주들을 연행․소환하여 통폐합조치를 통보하고 이의가 없다는 내용의 각서를 강제로 받았다.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 아래, 1980년 11월 14일 한국방송협회, 신문협회등은 총회를 열고 방송, 신문 통합 등 소위 '대한민국 언론의 개혁'을 골자로 하는 건전 언론 육성과 창달에 관한 결의문을 발의했다. 이에 따라 중앙지 신문은 7개에서 6개로, 지방지 신문도 14개에서 10개로 줄었다. 합동통신과 동양통신이 해체·통합되면서 연합통신이 설립되어 대한민국의 유일한 통신사가 됐다. 방송에서는 한국방송공사가 민영 방송인 동양방송, 동아방송, 전일방송, 서해방송, 한국FM을 강제합병하고, 민영방송 문화방송의 주식 65%를 강제인수함으로써 대한민국 최대의 언론 기관이 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 1980년 12월 1일, KBS를 선두로 컬러방송을 시작했고, 1981년 3월 7일부터는 KBS가 상업광고를 실시했다.
- 1980년대 후반부터는 정기간행물과 일간지의 발행수가 크게 증가.
- 1987년부터 광고시장이 부분개방되었다가 1991년 완전히 개방되고 민영방송도 발족.
- 1989년 외국인 광고모델이 허용됨.
- 1990년대부터는 다양한 뉴미디어가 등장하였으며, 광고가 대중문화의 주체로 자리잡고 한국사회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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